달그락달그락 by dmayer





요즘 남동생의 점심을 차려주는 것 이외에 딱히 할일이 없는 엄마는 거의 매일 우리집에 온다.
집앞에 마트에서 먹거리 조금을 사다가 나와 한끼를 때우거나 
얼마전 사다놓은 전기장판을 뜨끈하게 틀어놓고 잠을 조금 자거나.
그리고 부엌일을 한다. 여기까지 와서.

계속해서 말려도 엄마는 그만두지 않는다.
싱크대에 한참을 서서 엄마 마음에 들 때까지 닦기를 계속한다.
달그락달그락. 나는 그 소리가 참 듣기 싫다.

나는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게 싫었다.
초등학교 국어책 어느 곳에서는 아침에 잠을 깨우는 칼질소리를 미화하기도 했었는데,
내겐 어릴 적부터 지금껏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엄마의 어떤 아집, 고집이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고집이란 표현이 정확할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싱크대 앞의 엄마의 뒷모습은 불행했다.
자신의 인생이 한 끼 끼니와 함께 사라져버린다는 느낌. 
좁은 부엌 한켠에 박제되어가는 자신의 인생앞에 분명히 그녀는 불평하고 있었다.
또각또각 칼질 사이로는 살갑지 않은 아이들과 끔찍한 남편에 대한 원망이 스물스물 베어나왔다.
엄마는 그 앙금들을 마주하며 매일 싱크대를 반짝반짝 윤이 날때까지 닦았다.
나는 도저히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모두 집을 비운 사이 엄마는 그 빛나는 식기들 앞에 앉아 가장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아닌 여자가 되는 것이 꿈인 적도 있었다.
드높은 자아와 적당한 이기심, 안정된 경제력 정도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누구에게나 사나웠고 조금이라도 손해보는 것 같으면 끙끙 앓았다.
내것을 최대로 지키는 것이야 말로 나를 인정받는 길의 기본이라고 여겼었다.
내가 베푼 것보다 애정이 모자란다며 친구들이며 가족들에게 땍땍거리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엄마의 환영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았다.
2년 전 자신이 떠난 부엌 앞에서 엄마는 나의 부족함을 탓하지만 
3형제 중 내가 가장 자신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런지 모르겠다.



여전히 엄마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선택과 인내, 그것이 이끌어 준 바로 그녀가 서 있는 그 자리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고 있을까.
탄생과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성별. 기로에서 자신의 선택이 가지는 의미들. 그리고 까닭.
일이나 사랑, 가족, 사회, 하물며 연예인이나 가방, 구두에도 사람들은 저렇게 몰두하며 사는데
엄마는 20대 초반부터 한결같이 부엌에서, 마치 결코 탈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찌개와 함께 피어오르는 자신의 불행을 마주하면서 무엇이든 알 수 있게 된 것이 있지 않았을까.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려봐도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번쯤은 나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었잖아'
라고 소리쳐봐도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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